욥은 자신의 고난을 계기로 하나님께 불편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욥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일들입니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욥24:1)
신실한 형제 자매들이 오랜 시간 고통 가운데 지내는 모습을 볼 때 욥과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결혼이나 삶의 형편이 오랜 시간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욥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악한 자들처럼 살지 않다 보니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욥24:10)의 모습조차 있습니다.
이삭이란 배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삭이 배로부터 분리되어 쓸데없이 창고에 쌓여만 있다면 바르지 않습니다.
가장 큰 아픔 가운데 하나는 배고픔입니다.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배고픔이 그만큼 큰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표현할 때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애가 끓는다고 했습니다. 창자로 느끼는 고통입니다.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얼마나 큰 대조입니까? 빈부의 차이, 절대빈곤, 노숙자, 북한과 난민들..
월가의 탐욕스러운 모습과 같이 떠오르지만, 과연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곡식 이삭이 배고픈 자의 창자에 들어가는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