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욥30:24)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삶의 방식이 그렇다. 욥도 마찬가지이다. 욥은 과거에 고생하던 이들을 위해 울어주고, 빈궁한 자를 위하여 마음에 근심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욥에게 큰 재난이 닥쳐왔다. 이제 욥이 손을 펴고 도움을 부르짖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욥30:29) 탄식한다. 사람들이 친구가 아니라, 들짐승들이 친구이다. 정작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욥이 도움을 주었던 이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깊은 절망이 든다. 욥의 비참한 심경은 [그러나 이제는]을 세 번 반복하면서 나타난다(욥30:1,9,16).
욥의 양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들이 자신을 조롱한다. 노래로 조롱하고 놀림거리로 삼으며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는다. 생명이 속에서 녹아난다.
억울함과 분통이 욥 안에서 치밀어 오른다. 울분이 솟는다. 욥은 그 마음을 다 토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들 묵묵히 한 몸에 다 지셨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느낌, 얼마나 세상이 잔인하게 생각될까?
예수님은 그와 같은 마음에 있는 이들을 아신다. 겪으셨기에!
우리 주변에 욥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