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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03 06:44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글쓴이 : 서은성
조회 : 1,722  
 

욥의 친구는 욥의 위로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욥의 고난의 원인을 분석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욥의 변론에 막혔습니다. 그러나 가장 연소한 엘리후가 참다 참다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화를 냅니다.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32:1-5)

자신은 나이가 적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의 지혜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뜻한 대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엘리후는 자기가 나서게 연유를 밝힙니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든지 [보라 배는 봉한 포도주 같고 터지게 가죽 부대 같구나 내가 말을 하려야 시원할 것이라](32:19,20) 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이 말하도록 참고 참습니다. 관료들의 , 정치인의 , 언론의 , 지식인의 , 학자의 말들을 듣고 듣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답이 되지 않습니다. 화가 민초의 입에서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엘리후처럼 말을 하면 시원할 같습니다. 말을 해서 실제로 시원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 일은 드물고, 오히려 생채기만 더할 가능성이 큽니다. 말을 하면 시원할 같은 생각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음을 토로하고 기도하는 것이 답답한 마음이 터질 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