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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23 10:27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글쓴이 : 서은성
조회 : 1,36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지만 그에게는 딸린 식구들이 많았다.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창12:5)라고 하는데,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창14:14) 라고 하는 것을 보아 꽤 많은 수인 듯하다. 그들의 가족들도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을 때는 사라의 몸종 하갈도 추가 되었고, 자식이 없을 때 후사로 삼으려고 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도 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공동체를 만드신 것이 아니겠는가?
아브라함이 나이 많이 늙고서 아들 이삭의 배필을 찾으려고 할 때 늙은 종에게-엘리에셀로 추정되는데-시켰다. 이삭의 배필을 찾아나서는 늙은 종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브라함을 닮았다. 아브라함의 복이 종에게도 전달되었다. 창22장에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는 모습만이 절정이 아니라, 더 나아가 창24의 공동체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또한 대단원의 막이 아니겠는가? 종은 주인을 보고 닮는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창24:35) 고백하는 늙은 종은 모든 과정 속에 철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습이다. 아브라함과 다르지 않은 신앙이다. 한 사람이 바로 설 때 그 공동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빚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반석위에 교회가 공동체의 거룩함으로 나아가야하지 않겠는가!